영화 다시보기
오래전에 봤지만 2021년이후 겪었던 일들 이후에는 그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었
코드와 메세지가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많은 영화들속에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빙자한 풍자 코드로 통제된 미래를 배경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그런 통제된 사회구조와 시스템은 공포와(자유사회) 억압을(반자유주의 사회) 커다란 도구로 사용한다.
이런 도구들은 정보의 제한과 조작, 불평등(특권의 정당화), 신체적 제한, 비인도적 처우등이 부수적으로 따라붙곤한다.
그렇다면 왜 미래의 지속가능성은 자꾸 그런 강화된 권력과 통제된 시스템에서 찾으려고 하는걸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특정 소수의 필요와 의도대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움직여져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고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게 쉬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이다.
이것은 도미노 블록 쓰러뜨리기나 열역학법칙과 비슷하여 번지는 들불같은 좀비들처럼 그 확산세를 진정시키기가 어려운 만큼이나 일단 탄력을 받으면 관성처럼 그 세태를 유지해내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50년을 살아온 필자가 최근에서야 숨겨둔 쌍둥이가 있었음과 일명 그 디어더원 이라는 캐릭터가 필자를 대행하듯 돌아다닌다는 소문을 알게됐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다.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상실한 생명체는 못할짓이 없음을 세상의 많은 캐릭터들은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속 스토리처럼 혈육의 목숨을 팔아버린 인간들이 보다많은 기회를 가질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이미 수많은 타자들의 목숨이 먼거리의 도미노 블록처럼 애저녁부터 쓰러져오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특수목적 소수들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꾸준히 점진적으로 계단식과 사다리타기식 또는 대타, 지명타 식으로 요구하고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며 최대한의 다수들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는 집단은 최소한의 소수라도 희생으로부터 보호하려는 특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역설적 관계이다.
그 특수목적 암세포와도 같은 세포들은 그 확산세가 많이 퍼지면 반드시 자신의 숙주와 함께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쯤이면 마감시간에 이르러서야 되곤하는데 바로 지구촌의 생체시스템에서 퍼지고 있는 종양의 상태를 잘 보면 그 시기를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