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2019)를 비판한 사람에게 보내는 구구절절한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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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를 보러갔다. 감독의 반성문이나, "아서:폴리 아 되" 가 아니라 "조커: 폴리 아 되" 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은 내 눈 앞에는 상상도 못 했던 지루한 것이 펼쳐졌다.
조현병 환자가 휘갈긴 문장처럼 두서없고 산만한 음악 배치와 우울증 환자가 배설한 각본만이 자리하고 있는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날 고문했다. 감독이 의도 한 것이 정신병자가 붕괴하는 것을 관객이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었다면 성공했다.
화면에서는 사회와 정신병과 인간관계에 고통 받는 소시민이 무너져 내리고 있고, 나는 졸음과 지루함과 나가서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게 낫겠다는 충동에게 무너지고 있었다.
소시민이 타인이 되고자 했지만 실패하며 붕괴하여 무너지는 내용을 담은 인상 깊은 영화였다.
그러나 테마파크의 상징 중 하나인 이름을 달아놓은 채 시네마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차는 걸 구경하는 것은 끔찍했다.
적어도 DC의 조커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서가 어떻게 조커로서 완성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궁금증을 배신하고 걷어찬 뒤에 관객의 멱살을 잡고 "넌 아서에게는 관심이 없고 조커에만 관심이 있어!" 라고 외친다.
개소리다. 나는 아서가 외롭고, 고독하고, 남의 애정을 갈구하며 상황에 휩쓸리고 있는 소시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광기의 상징이 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아서에게 매몰된 이 영화는 조커 영화가 아니었다. 물론, 아서가 고담에 남겨놓은 조커의 초석은 남아있겠지만 적어도 그건 내가 조커(2019)와 조커:폴리아되 에서 기대한 조커는 아닐 것이다.
제목에 조커를 붙여 놓고 이따위 개짓거리를 하면 뭐 어쩌란 말인가?